음식을 먹다 = 에너지를 얻다
조금 거북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다른 생물을 먹는다는 것은 곧 다른 생물의 화학에너지를 가로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위에서 효소가 음식의 화학성분을 분해해서 몸 안의 다양한 활동계로 실어 나르게 된다. 가령 지방은 호흡을 통해 빨아들인 산소와 결합하여 세포안에서 활활 타면서 열에너지를 낸다. 이런 열에너지로 몸을 36.5도씨로 데우고 숨쉬고 생각하고 움직이며 생존한다. 사람 분만 아니라 생물은 모두 자신에게 맞는 먹이를 먹고 온 생태게는 이렇게 먹는 과정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옮기고 있다. 생태계 안에서 에너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무엇이 무엇을 먹는지에 달려 있는데, 먹는 것과 먹히는 것의 연쇄를 먹이사슬 또는 먹이그물이라고 한다. 물리 이론 중 열역학 제 1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새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생김새만 달라질 뿐이다. 처음 시작되는 에너지는 어딜까. 바로 태양이다. 그러니까 만물을 먹여살리는 것은 태양이다. 지구가 받는 햇빛의 30%는 우주로 반사되고 50% 가까이는 열로 바뀌며 나머지는 증발, 비, 바람 등 물 순환에 모두 쓰인다. 생명이 쓰는 햇빛은 1%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얼마 안되는 햇빛이 생명에게 필요한 모든 식량을 광합성으로 제공한다.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구어 저장한다. 녹색식물 세포에서 공기안의 이산화탄소, 땅에서 빨아올린 물, 태양에서 온 햇빛이 뭉쳐서 당을 만들어낸다. 당은 복잡한 유기화합물로 화학에너지를 담고 있다가 나중에 쓴다. 광합성의 찌꺼기로 나오는 것이 산소다. 이렇게 저장된 화학에너지가 지구의 모든 생물지질화학 순환의 원동력이다. (에외는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선 다루지 않는다.) 물리의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 변환은 절대 100% 효율이 나올 수 없다. 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열로 날아가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식사를 해도 음식안에 들어있는 화학에너지의 일부만 쓰이고 나머지는 허비된다. 초식도물은 보통 먹는 식물에너지의 10%를 에너지로 쓰고, 나머지는 열이나 땀으로 날아간다. 육식동물도 10%가량을 쓰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식물에너지의 1%만 온전히 육식동물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보면 먹이 사슬이 짧을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진다.
자기 자리를 찾다
종은 생태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내야 한다. 본인에게 물, 햇빛, 기온도 적당하고 먹이도 풍부한 서식지로 파고들어야 한다. 이렇게 생존에 유리한 요소를 모두 갖춘 곳을 자신의 생태적 지위, 즉 니치(Niche)라고 한다. 종마다 니치는 다르다. 보통 식물은 볕이 잘들고 물이 잘 빠지는 언덕바지를 좋아하지만 어떤 식물은 물이 잘 안빠져서 습하고 그늘 진 곳을 좋아한다. 별별 니치가 다있는데, 가령 잉글랜드의 찌르레기(새)는 양이나 사슴의 몸에서 튕겨 나오는 진드기만 먹고산다. 자원이 풍부하면 니치는 넓지만 대부분은 자원이 부족하므로 겹치는 니치 안에서 경쟁이 벌어진다. 두 종이 똑같이 희귀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면 보통은 한 종이 다른 종을 몰아낸다. 밀려난 종은 먹고 살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경쟁배타의 원리) 두 종이 공유하던 니치가 잘게 쪼개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가마우지와 민물가마우지는 모두 물속으로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인데 가마우지가 민물가마우지보다 더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언젠가 깊은 곳 물고기 씨가 마르면 둘은 사생결단 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두 종이 섞여 사는 과정에서 각각의 개성을 살린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가령 한 종은 가늘고 긴 부리를 발전시켜서 큰 벌레를 잡아먹는가 하면 다른 종은 투박하고 뭉툭한 부리로 씨를 깨트려 먹는다. (형질 강화) 이렇게 같이 섞여 살면 모두 좋겠다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그 대는 더 빠르고 강하고 제약 요소의 변화를 잘 이겨내는 종이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면서 다른 종을 완전히 멸종시키기도 한다. 생물이 꼭 죽기 살기로 경쟁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공생'은 두 종이 에너지를 나누거나 장점을 공유하면서 평생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이득을 보는 양상에 따라서 공생을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방공생은 한 종만 이득을 보고 다른 종은 손해도 이득도 없다. 우리가 과일 나무의 과일을 먹어도 나무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상호공생에서는 두 종이 함께 득을 보는데, 대표적으로 악어와 악어새, 산호와 미생물의 사이를 볼 수 있다. 악어새는 악어의 이 사이의 음식물을 먹고, 악어는 이를 썩지않고 관리하게 된다. 산호는 미생물에게 보금자리를 내주는 대신 미생물이 분비하는 영양분을 먹고 산다. 기생에서는 한 종이 다른 종에게 얹혀살면서 조금씩 에너지를 빨아먹는다. 거머리, 벼룩, 진드기 등이 있다. 에너지를 빼앗기는 쪽은 기분이 상할 것이고 이 상황은 인간사에도 존재하여, 그런 사람들을 거머리, 벼룩, 진드기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테리아, 원생동물, 진균 등에 의한 감염으로 아픈것도 사실 이치는 기생이다. 기생은 한 종은 이득을 보고 다른 종은 손해를 본다.
포식자가 나쁘기만 할까?
포식의 이치는 간단하다. 한 종이 포식자가 되어 다른 종을 먹이로 사냥하여 잡아먹는 것이다. 생태계 안에서 에너지는 이런 식으로 전달 된다. (부패도 에너지 전달의 한 방식이긴 하다.) 우리가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익히 봐온 포식은 잔인해 보이지만, 사실 먹이가 되는 종에게도 나쁠 건 없다. 포식자가 먹이로 삼는 것은 주로 느리고 뭔가 약한 만만한 개체이므로 빠르고 특튼한 개체가 살아남게 해주기 때문이다.
포식자 개체군과 먹이 개체군은 역동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너무 많이 잡아먹으면 먹이 개체군이 줄어들어서 결국 포식자도 굶어죽는다. 그러면 먹이 개체군은 다시 커지고 덩달아 포식자 개체군도 커졌다가 다시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규모가 줄고 커지고를 반복한다. 포식자는 먹이사슬 곡대기에 있다. 먹이에너지는 식물에서 포식자로 올라가 거기서 멈춘다. 물론 포식자에게 기생하는 종으로 넘어가는 에너지도 있다. 기생개체에겐 그것이 전부일 지라도 포식자 입장에서는 아주 적은 양이다. 이런 포식자의 에너지는 포식자가 죽은 뒤 순환하게 된다. 포식자도 죽으면 시체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동물을 통해서 화학에너지가 다시 생태계로 돌아간다. 이러한 포식자의 번식을 제약하는 요소는 먹이의 공급, 사냥 솜씨, 때에 따라서는 먹이를 바꿀줄도 아는 융통성, 궁극적으로는 포식자가 사는 곳의 총에너지다. 그런데 만약, 어떤 괴물 포식자가 있어서 이런 제약을 모두 뛰어넘었다고 해보면 어떨까? 사냥 솜씨를 끊임없이 갈고 닦고 '발전'해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포식자. 도, 다른 동물은 까맣게 몰랐던 '에너지' 확보의 비밀을 알아낸 포식자. 그게 누구인지. 당신이라면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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